오페라 갈라 공연 안내

 

 

리골레토(Rigoletto)
 -베르디 3막

대본:피아베, 이탈리아어
때:16세기 경
곳:이탈리아의 만토바와 그 근교
초연:1051년 3월 1일 베네치아의 페니체 극장
연주시간:제 1막 약 50분 제 2막 약 25분 제 3막 약 32분 총 1시간 50분
프랑스의 문호 빅트로 위고의 <<환락의 왕>>이라는 희곡을 피아베가 대본으로 옮겨 써서 오페라화 한 것이다. 이것은 주색의 악한 행실로서 이름난 국왕 프랑시스 1세의 난행을 둘러싼 이야기이다. 당시 베네치아 정부는 전제정치에 대한 혁명사상의 움직임을 이유로 대본을 제출 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베르디는 이 내용을 흥미있게 생각하여 대본은 그대로 두고 장소가 파리인 것을 이탈리아의 만토바로 바꾸고 인물은 프랑시스 1세를 만토바 공작, 트리브레를 리골렛토로, 그의 딸 블란슈를 질다등으로 고치고 제목도 [리골레트]로 하여 당국의 허가를 받았던 것이다. 이 작품의 특징은 그의 극적인 음악에 있다. 무미건조한 레시타티브보다는 일관된 오케스트라로서 노래를 계속하여 3막의 극적인 효과같은 곳에서 뛰어난 점이 있다
 

17. 노르마(Norma)
 -벨리니 2막의 비가극

대본:로마니, 이탈리아어
때:기원전 50년경 로마 공화국의 말기
곳:갈리아 지방
초연:1831년 12월 26일 밀라노 스칼라좌
연주시간:제1막 약 70분, 제 2막 약 60분, 총 2시간 10분
기원전 50년, 고르족속이 로마에 침입했을 때 고르족 브리톤 등 상고의 케르트 민족 사이에 있었던 종파의 종 드루이드의 고승 노르마는 로마의 총독 폴리오네와 가까이 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이 폴리오네가 같은 사원에 있는 젊은 여승인 아달지자와 관계를 맺는 3각 관계에서 사건이 벌어진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화형에 처한다는 줄거리로 된 비가극이다. 이 작품에 대해 벨리니는 말하기를 "모든 것을 희생시켜서라도 노르마만은 살리고 싶다"고 했다 그만큼 작곡자는 이 오페라에 자신을 가졌음은 물론 그의 특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이 정가극은 베르디 이전의 이탈리아 오페라 중에서 굴지의 명작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서곡>
벨리니의 서곡 중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것으로 단독적을 연주된다. 처음에 힘차고 엄숙하게 화음이 연주되면서 신선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뒤이어 목관악기의 조용한 연주는 소박한 멜로디이며, 계속해서 장중한 행진곡조로 바뀌면서 현악기로 연주하는 빠르고 섬세한 멜로디가 이어진다. 다시 노르마의 사랑의 테마가 극의 마지막에 나타나는 모티브 등이 교묘하게 구성되어 작품 내용을 암시하면서 전개

가면 무도회

가면무도회는 1792년에 일어난 실화인 구스타프 3세  Gustay III  의 암살사건을 모태로 한 이 오페라는 1833년 프랑스에서 오겐 Eugene의 대본을 기초로 좀마 Antonio Somma가 5막을 3막으로 개작하여 낸 것이다.  구스타프 3세는 스웨덴의 계몽 절대 군주로서 귀족들의 횡포를 종식시키며 평화스러운 국가를 만드는데 힘을 쓴 사람이다. 18세기의 유럽은 계몽시대라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로 이루어진 부와 종교개혁으로 만들어진 권력은 민중들을 지배하는 절대왕정이라는 한 수단으로의 조건이었고, 철학과 과학의 발전 역시 이러한 정치의 수단으로 변모하여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에게 는 더욱 큰짐이 되었다.
그러나 많은 군주들이 개혁의 바람을 타고 제도 개혁과 정책상의 실험을 통하여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며 또 옛 제도를 개혁내 나가면서 그들만의 국가, 그들만의 시대로의 전환을 꾀했다.  프러시아나  러시아는 귀족들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다시 뒤로 가는 정치를 계속하였으나 오스트리아 외에 다른 중부유럽에서는 귀족의 세력을 군주의 권력아래에 두면서 점전 세력의 변화가 일어 났다.  이러한 정부의 최초의 대표적인 군자가 바로 스웨덴은 폴란드 계승전쟁으로 인해 국력은 쇠하여지고 귀족들의 국회로 권력이 이전하여 있었다.  1772년 구스타프 3세가 이를 종식시키는 쿠데타를 일으키며 귀족의 집권을 마무리 지었다.  백성들은 귀족의 횡포로부터 벗어나게 해 준 이 국왕에게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예술을 장려하고 문학과 연극, 그리고 음악들을 좋아하여 문화적인 발전을 거듭하였고, 또 헌법을 새롭게 고쳐 계몽원리를 첫째로 하고는 국왕에게 권력이 집중되도록 하였다.  프랑스혁명마저 구스타프의 행동을 계몽절대주의의 완성이라고 인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귀족들에게는 치욕적인 일이었고 그들의 기반을 빼앗긴 것이 되어 이 계몽왕은 언제나 위험에 빠져 있었다.  실제로 많은 반란과 암살음모도 존재하였으나 1792년 오페라 하우스

의 암살사건은 몰락한 귀족인 엔카스트로엠 Ankasrstroem 이 사건에 치밀한 계획을 세운 뒤에 극장에 숨어 있다가 권총으로 사살하였다.  당시에는 계몽군주의 개혁과 발전을 암살이란 도구로 막았다는 것이 매우 크나큰 사건이었지만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프랑스에서의 테러가 훨씬 충격적인 사건이 되어서 세계사적으로는 큰 위치를 가지지 못하였던 것이다.  구스타프의 죽음으로 스웨덴의 훌륭한 정치의 실험은 막을 내리게 되었고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행하여 졌던 많은 개혁들이 멈추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개혁의 바람은 계속 진행되었고 근대 시대로의 변화를 추구했다.  프랑스에서 1840년 오버 Auber가 오페라로 만들었고 또 이탈리아에서도 똑같은 내용으로 오페라가 제작되었던 것 외에도 많은 연극과 역사적인 사료가 남아 있다.  가면무도회는 어떻게 보면 한편의 멜로드라마라고 할 수 있으나 또 다른 면으로 보면 사회적인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한 사랑의 이야기이기보다는 절대권력에 대항하는 여러 인물들과 또 그에 얽힌 여러 가지 사랑이야기들이 복합되어 만들어내는 한편의 서사시라고 할 수 있다.

 

나비부인(Madame Butterfly)
 -풋치니 2막

대본:자아코사와 알리카, 이탈리아어
때:현대(일본의 명치시대)
곳:일본 큐우슈우의 나가사키
초연:1904년 2월 17일 밀라노의 스칼라좌
연주시간:제 1막 45분 제 2막 1장 45분 2장 30분 총 약 2시간
이 [나비부인]의 원작은 존 루터 롱의 소설인데 풋치니의 오페라는 이 소설을 미국의 흥행주 겸 각색가인 벨라스코가 번안한 희곡을 원본으로 한 것이다. 이 연극이 뉴욕과 런던에서 크게 성공하였는데 때마침 풋치니가 보고 감격한 나머지 밀라노에 돌아와 이 오페라의 대본을 서두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황금의 트리오를 이루고 있는 자아코사와 일리사의 각색으로 오페라의 대본이 완성을 보게 되었다. 비상한 정열을 가지고 작곡한 그는 도중에 병과 자동차 사고 등으로 인해 1년 반이나 걸려 완성하였으나 이 오페라의 초연은 뜻밖에도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후 일본의 의상과 풍속 또는 연출 등에 다소 수정을 가하여 초연 3개월이 지나서 재공연 하자 압도적인 성공을 보았다. 이 오페라의 음악은 작곡자 자신의 말과 같이 지금까지 자기가 쓴 가극 중에서 으뜸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화려하고도 애처로음이 있는 음악으로 엮어진 극음악이라 하겠으며, 이탈리아 오페라의 특유한 아름다움의 전형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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